"김영하 추천 '이언 매큐언의 숨은 걸작'"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순간이 오기 직전,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햇빛 가득한 봄날의 풀밭에서 연인과 피크닉을 즐기고 있던 조 로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의 소풍과 평온한 삶에 작별을 예고했지만 조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헬륨이 가득 든 거대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안에 소년이 혼자 타고 있다는 것을 본 조는 열기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열기구에 달린 밧줄에 매달리지만, 거센 바람이 기구를 공중으로 끌어올리자 모두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극이 벌어지고야 만다. "제일 먼저 밧줄을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처절한 물음과 "나는 아니다."라는 안도감, "이타심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라는 변명, 모두가 체중을 실어 밧줄을 계속 잡고 있었다면 열기구가 땅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끝없이 반복되며 조의 일상을 잠식하고,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 저술가로 일하며 평생을 믿어온 가치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을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파헤치는 소설. 김영하 작가가 "이언 매큐언의 작가적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라고 말하며 추천한 작품이다.
- 소설 MD 권벼리 (2023.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