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타인을 대상화하고 멸시하는가"
'내로남불' 네 글자가 인간사 모든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답고 복잡한 맥락의 내 사정과 하나의 단면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네 사정. 한 단어로 된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너와 한 문단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나. 내면이 없(다고 여겨 지)는 납작한 상대는 이미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므로 부담 없는 처단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차가운 파괴력, 대상화다.
이 책은 인간의 대상화에 관한 20년 연구의 결과물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왜 다른 인간에게 잔인해지는지, 그 이유를 대상화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한다.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일상적 무관심부터 타인을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유도체에 불과하다고 인지하는 유도체화,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격도 없다고 여기는 비인간화까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대상화의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분석한다. 마사 누스바움,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등의 선행 연구를 참고하여 적절한 틀을 제시하는 깔끔한 설명은 여러 학문의 논의를 아우르면서도 확실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혐오를 생각하며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빈도가 느는 것이 기분 탓만이 아닌 요즘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다 같이 2D의 지옥에서 구르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은 대상화를 탈출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짐작하겠지만, 만사형통의 해답은 없다. 각자 자신의 맹점을 돌보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 책의 도움으로 또 자신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 인문 MD 김경영 (2021.06.01)